미얀마 현 상황
최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미얀마 국민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폭력 시위로 진행할 경우 무력 진압으로 되돌아 올 가능성 때문에 기본적으로 평화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마, 군부가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물대포 구타, 최류탄, 섬광탄에 총까지 무장한체로 진압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포탄 고무탄에 이어 실탄까지 넣고 사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상 찍지말라고 총으로 위협까지 한다고합니다.
현재 부상자 사망자 실종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죽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을 죽이는것도 문제이지만 아이들도 죽인다고 합니다. 시위에 나가기전에 크게 다치면 수혈을 받기위해 팔목에 혈액형과 연락처를 쓴다고 합니다. 대체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얀마 시위 알기전 배경 지식
미얀마 시위 배경을 알기 위해서 먼저 천년정도 과거로 돌아가보도록 하겟습니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국이 11세기에 등장합니다. 이러한 통일 과정에서 정복전쟁이 있었는데, 이때 소수 민족들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다 나라가 기울고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질때 마다 소수 민족들이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하고, 또 다시 무력으로 통일이 되고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미얀마의 역사는 내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대가 중요해지고, 무력이 중시되는 사회가 정착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것 입니다. 현대에도 여저히 소수민족 분쟁을 관리하면서 군부가 세력을키우게 됩니다.
미얀마 중앙에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7개주가 있습니다. 인구의 다수인 버마인들이 주로 살고 있습니다. 바깥에는 7개 주는 소수 민족이 살아가고있습니다. 어느정도는 자치를 하고 있고, 사는곳 부터 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행정이나 정치적으로도 구분이 되어있습니다. 소수민족만 13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민족들이 공존하는것이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국민 화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미얀마 영웅들의 바람이기도 했고, 근데 이런 민족분열은 근대로 오면서 더 심해집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 산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였던것 처럼 미얀마도 영국의 식민지엿습니다. 영국은 미얀마 국민들이 뭉치지 못하게 이간질을 합니다. 민족마도 차별대우를 하면서 민족끼리 사이가 않좋아집니다. 이때 아웅 산이라는 사람이 영국에 저항해서 박차고 일어납니다. 아웅 산은 독립운동을 이끈 민족의 지도자 입니다. 현제에도 전 국민이 추앙하는 국부라고합니다. 민족이고 종교고 계층을 떠나서 아웅 산 앞에서는 한마음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독립군을 창설하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서 영국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일본이 미얀마 독립을 도와주면서, 서양을 쫒아내고 아시아 전체를 장악하기위해 일본일 미얀마를 지배하게 됩니다. 나중에 일본이 패망하고 독립이 다가오면서 아웅산이 소수민족 대표들을 모아서 약속을 합니다. 소수의 민족의 자유와 자치를 보장하겠습니다. 그리니 우리 이제 민족 분쟁은 그만하고 다른 민족이 아니라 같은 국민으로써 잘 살아보자느는 협정을 맺습니다. 국민의 화합을 꿈꾸는 협정 이름은 팡롱 협정입니다.
이때 아웅 산은 전 국민의 구심점이 되면서 미얀마 문제의 근원 민족 분열을 해결하고 국민 통합을 이룰수 있었던 순간 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암살당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김구 선생님과 비슷한 행적을 남겻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군부정치가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
독립 직후 곧 바로 군사 독재가 시작된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민정으로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민간 정부가 일처리를 잘 못해 아웅 산이 소수 민족의 자치를 약속했지만, 근데 이 민정 정부는 소수민족을 차별을 했습니다. 특히 불교를 국교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까지 합니다. 심지어 미얀마는 민족마다 종교가 달랏기 때문에 소수민족들은 봉기를 일으키고 내전으로 나라가 많이 시끄러워집니다. 그리고 이때 군부가 내전을 진압하는동안 공적을 쌓으면서 성장하게됩니다. 심지어 이때의 군부는 독립군 출신들이었습니다. 아웅 산이랑 같이 싸웟던 사람들이었던것 입니다. 출신 성분부터가 자부심이 넘치는 거였습니다. 이러한 기세로 정치에도 욕심을 내게 됩니다.
1962년 네 윈이라는 남자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게됩니다. 이게 미얀마 현대사 최초의 쿠데타라고 합니다. 이때 군이 가진 힘인 무력에 정치권력이 더해지면서 사회가 불안정하다, 내전을 종식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변호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내부의 적을 만들고 국민들을 이간질로 하여 서로 물어뜯게하여 사실상 60년간 가까이 장기 독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다민족 국가로서 생기는 필연적인 분열은 군부를 지켜주는 창과 방배가 되고 있습니다.
무력에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여기에 돈까지 얻기 위해 사회주의로 가겠다고, 공산주의 경제를 주입했습니다. 기업과 시설을 모두 국유화 하고, 사유 재산들을 군부가 몰수한 다음 공평하게 다시 분배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독재가 대게 그렇듯 몰수까지만 되고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만 나눠먹게 됩니다. 국유화가 아니라 군부의 사유화로 전락하게 됩니다. 국가의 부를 이런식으로 군부가 독제하게 되고 나중에는 조금씩 민영화로 돌리기는 합니다. 나라가 쥐고 있던 기업들을 민간에 뿌리기는 하지만 여전히 군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기업이 많다고 합니다.
기업들이 여전히 군부의 자금원이라고합니다. 재벌이면서, 동시에 군벌인것입니다. 경제려과 무력 정치권력을 모두 가진것입니다. 나라의 모든 권력을 독제합니다.
미얀마 쿠데타 역사
올해 일으킨 쿠데타가 처음이 아닙니다. 올해 일으킨 쿠데타가 3번째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들의 저항역시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저항 운동이 처음 터지기 시작한 이유가 군부가 나라 경제를 망쳐놧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다른것은 조금 못해도, 못먹고 못살게 하는것은 절대 용서가 안되는데 사회주의 한다고 글로벌 경제에서 고립되고, 부를 독점한 군부는 잘살게 되지만, 나라 전체는 가난해 지게됩니다. 당시 미얀마가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정치는 폭력적이고, 사회는 불안정하고,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인계치가 넘은것입니다. 특히 학생이 경찰한테 맞아죽는 사건이 터지면서 기폭제가 됩니다. 그렇게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면서 88년8월8일에 일어나서 8888 항쟁이라고 합니다.
이때도 지금처럼 군부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면서, 시민을 3천명이나 죽이게 됩니다. 근데 또 이 난세에 아웅 산 수치 라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 산의 딸 입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딸은 사회 운동가가 됩니다. 아웅 산 수치는 원래 정치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영국에서 영국인이랑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미얀마의 상황을 보고 운동권에 합류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아웅 산 수치는 민주주의 세력의 구심점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운동권의 결집력이 강해지면서 당시 집권하고 있던 네윈의 입지가 약해집니다.
아웅 산의 딸 아웅 산 수치 등장
네 윈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네 윈을 몰아내고 소마 웅이 집권을 하게 됩니다. 소마 웅도 군인입니다. 군 내부에서의 우두머리만 바뀐것 입니다. 그나마 바뀐 정권은 국민들의 눈치를 봅니다. 당시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아 오랜만에 선거도 치르게 됩니다. 이때 아웅산 수치가 이끈 nld당이 압승하게 됩니다. 이로써 독재를 끝낼 수 있을것 같앗지만, 군부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서 선거가 없던일로 됩니다. 민주화가 또 다시 좌절하게 됩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에 대한 견제도 심해집니다.이때 아웅 산 수치를 감금하게 됩니다. 행여나 아웅산 수치가 대통령이 될까바 헌법까지 바꾸게 됩니다. 그후로도 크고 작은 민주화 운동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군부는 무력으로 진압을 햇고 잠시 한발 물러나 양보하는척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부가 자신감이 생겨 수틀리면 무력으로 진압하고, 잠시 한발 물러나 양보하는척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만심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거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역사가 짧게 보면 반복되는것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미얀마 민주화도 여러번 좌절이 있었지만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가 꽤 진행됫다고 합니다. 슬슬 시장도 개방할겸 서방 세계의 경제 제제도 풀 겸 고립된 경제를 벗어야 됩니다. 이제는 군부도 국제 여론이 신경이 쓰이게 되면서, 군부가 민주주의로 가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특히 아웅산 수치를 가택연금에서 해제하고 선거도 치르게 됩니다.
그러다 2015년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nld당이 압승하게 됩니다. 아웅 산 수치가 국가의 고문으로 지도자가 됩니다. 제대로 된 민정이 들어선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권은 거의 군부가 잡고있엇고 제일 중요한 경제력도 군부가 독점했고, 정말 약한 힘의 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한걸음 디뎟다고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아웅 산 수치는 아버지가 그랫던것 처럼 소수 민족들의 자치를 보장 하면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이맘때즘 서방 국가랑 교류도 많아 집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 시기에 미얀마에 많이 진출하게 됩니다.
군부 세력 과 아웅산 수치
국민들들도 그렇고 국제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안팍으로 군부한테 안좋은 여론때문에 군부도 착해진척을 하고 있던건데 군부 입장에서는 겨우 밥한술 양보한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렇게 한술 한술 떠주다 보면 모두 잃을것같다는 생각에 군부는 민정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물리적인 제거는 안되니 명성에 타격을 주기로 합니다. 또 다시 소수민족 문제를 꺼내서 이용합니다. 특히 로힝야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있습니다. 다른 소수민족이랑은 다르게 거의 전 국민에게 미움을 받는 민족입니다. 왜냐면 식민지 시절에 로힝민 민족이 영국에게 앞잡이 노릇을 햇습니다. 참고로 이문제는 논문마다 다르기 때문에 따로 알아보는것이 좋습니다. 어쨋든 군부가 이 로힝야 민족을 쫒아냅니다. 죽이고, 겁탈하고 집에 불을지르고 난민 수십만이 다른 나라로 쫒겨 납니다.
이 대대적인 인종 청소를 가르켜서 군부가 신의 한수를 뒀다고 평가가 되는데, 이게 왜 신의 한수가 되느냐 하면 국제 사회가 인권 탄압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 이 비판이 아웅 산 수치에게도 갈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아웅 산 수치가 국제 사회 눈치를 보고 로힝야족을 우돈하면 국민의 민심을 져버리는것입니다. 영국의 앞잡이들을 편드는것이니까, 반대로 군부의 인간 청소를 변호하자니 국제 사회에서 엄청나게 비판을 할것입니다. 결국에 수치는 자신이 가진 힘의 두 축 국민의 지지와 국제 사회의 지지중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코너에 몰린것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것입니다.
이때 아웅 산 수치는 어쩔수 없이 군부를 변호하게 합니다. 결국 국제 사회의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국민들의 지지를 지키기로 합니다. 정치인의 근간은 국민들의 지지이니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수치 입장에서는 서방 세계에서의 지지라는 힘이 사라진것 입니다. 이제 정적인 수치의 입지가 약해지니 착한척 하던 군부가 다시 이빨을 들어 냅니다.
현 미얀마 시위 상황
작년 총선으로 연속으로 민주정치가 들어서면서 아웅 산 수치도 군부의 권력을 좀더 뺏어 보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헌법을 개정하려고 합니다. 헌법이 군부한테 유리하게 개조가 되어 있는것을 고쳐 군부의이권을 뺏을려고 합니다. 이에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킨것이 최근에 일으킨 것이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입니다. 여기서 군부는 미얀마는 내전 국가로써 아직 군사 정권이 필요합니다. 잠시 권력 일부를 뺏으면서 군부는 완전체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에 아웅 산 수치를 포함한 정부 인사를 구금합니다. 여기에 저항해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잇는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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