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표현합니다. 현재까지도 전쟁은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류 전쟁과 함깨한 전투식량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는 다양한 보존식을 만들어내고 발전시켯고, 전투식량의역사는 보존식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보존식이 처음 전투식량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겟습니다.
최초의 전투식량
438년 비잔티움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때 편찬된 테오도시우스 법전을 보면 전투식량에 대한 첫 기록이 나옵니다. 라틴어로 번역해보면 부텔라툼과 빵 와인과 식초 그리고 베이컨 양고기 기록에서는 이것을 원정을 나가는 동안 로마 병사들에게 반드시 제공하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첼라툼입니다. 부첼라툼은 로마인들이 먹던 보존식 빵입니다. 밀가루와 소금 물만 넣고 반죽해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두번 구워 내부 습기를 완전히 빼버리는 음식입니다. 아주 딲딱하다고 맛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기 원정이 많앗던 로마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식량이 필요햇던것이지 맛잇는 음식이 필요햇던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로마군인을 부첼라리라고 불럿는데 이 뜻은 부첼라리를 먹는 부대 라는 뜻입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중세에 들자 전투식량은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7세기 부터 11세기까지 외부 민족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아 치안이 안 좋았고 방어하기 바빳기 때문에 장거리 원정과 여행하기 힘들엇기 때문입니다. 슬라브, 아바르,불가르, 아랍, 무슬림, 마자르, 투르크, 노르만족까지 다양한 민족이 계속해서 침입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투식량으로써 보존식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됩니다.
근세의 장거리 항해와 전투식량
중세를 지나 근세로 넘어와 각국이 보존식을 필요하게 됩니다. 15세기 신항로 개척이 그 이유였습니다. 장거리 항해술이 발달하며 각국가는 앞다투어 바다로 나왔고 그에 따라 바다에서 오랜시간동안 보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배는 전부 나무로 만든 목조선이라 바다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기는 힘들었습니다. 이러한것은 각국 해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다에서 먹을 전투식량이 필요했던 유럽 사람들은 부첼라툼을 쉽 비스킷이라는 음식으로 개발하는데 쉽비스켓 제조방법은 부첼라툼의 제조 방법과 거의 똑같습니다. 쉽 비스켓을 더 오래 보존하기위해 최대 4번까지 굽기도 했습니다.
선원들의 식사는 곰팡이가 피는 빵에서 벽돌처럼 딱딱한 쉽비스켓으로 대체 되었습니다. 부첼라툼과 쉽비스킷의 차이가 있다면 쉽 비스켓은 장기간 항해를 위해 만들엇기 때문에 수분이 거의 없어서 부첼라툼에 비해 더 딱딱햇다고 합니다. 잘못 먹으면 이빨이 나가 씹어먹지는 못하고 대부분 물에 불려먹거나, 염장고기와 함께 죽처럼 끓여먹엇다고 합니다. 얼마나 딱딱한지 영국은 쉽비스켓을 던지는 행위를 금지하기까지 합니다. 쉽 비스켓은 썩지는 않지만 바구미라는 쌀벌레로 득실거렷고, 선원들은 비스킷에 강한 충격을 줘 벌레를 털어버리거나, 벌레가 보이지않는 밤에 먹엇다고 합니다.
신항로 개척이전에도 바다에서 먹을 전투식량이 필요햇던 민족이 있습니다. 바로 중세 유럽전역을 공격하고 약탈햇던 노르만족 바이킹 전사족 입니다. 바이킹족은 대구와 청어를 찬공기속에 건조시켜 소금을 이용해 보존기간을 늘렷고, 전투식량으로 활용햇습니다. 말린 생선역시 딱딱햇기때문에 밖에서 먹을때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묵어 먹듯이 부숴먹었습니다. 이외에는 육포를 먹기도 했습니다.
근대의 전투식량 개발 과정
시간이 흘러 근대 유럽 18세기 말 나폴레옹은 정복전쟁을 준비하며, 보급을 개선하고 병사들의 식사시간을 줄이기 위해 음식물을 조리된 채로 장기 보관할 방법에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에 12000프랑을 걸고 보관식에 대한 공모전을 엽니다. 12000프랑은 지금의 물가로는 약 2억원에 값어치를 합니다. 이 만큼 나플레옹은 전투식량을 중요하게 생각햇습니다.
1804년 제과업자엿던 니콜라아페르는 음식을 병속에 담아 3주이상 보관하는데 성공하고 그는 병속에 담긴 음식을 프랑스군에 가지고 갑니다. 통조림에 시초인 이 병조림은 유리병에 음식을 넣고 코르크로 막은뒤 밀랍으로 밀봉하고 병을 캔버스로 감싸 끓는물에 오래 조리하는방법으로 만들어 졋습니다. 당시 그는 과학적 원리를 알지는 못햇지만 음식을 보존할수 있는방법을 터득햇고 나플레옹으로부터 12000프랑을 얻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상할 위험이 작고 보급에 용이한 어떻게 보면 현대적 개념의 전투식량을 얻은것입니다.
하지만 유리에 특성상 무겁고 파손될 우려가 심하고, 제작비용이 많이들어 널리 상용화되지는 못햇습니다. 병조림의 발명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기술자엿던 피터 듀란트는 아페르에 병조림의 보고 영감을 얻어 양철 통조림을 개발합니다. 양철 통조림은 유리처럼 깨질일이없고 그대로 난로에 데워먹을수있는 좋은 전투식량이엇습니다. 하지만 양철 통조림의 밀봉상태가 매우 좋아 양철 통조림을 개봉하기위해서는 양철통조림을 부수거나, 칼로 찌르는등 제대로된 캔따개는 약 40년후에 개발됩니다.
아시아의 전투식량
아시아에도 과거 전투식량으로 쓰였던 음식들이 있습니다. 몽골고원은 겨울이 되면 풀이 나지않아 많은 가축을 기를수 없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약해보이는 가축을 도축해 식량으로 만듭니다. 이때 도축한 가축을 말려 보관해 겨울을 대비하는데 이를 바로 보르츠라고 합니다. 겨울을 대비하는 음식이니 우리나라의 김치정도의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을 통일하고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하게 된것은 보르츠 덕분이기도 합니다. 몽골군은 소를 도축해 보르츠를 만들어 소 방관에 넣고 다녔습니다. 소 한마리를 보르츠로 만들면 방광주머니 두개에 가득 찻다고 합니다. 보존기간이 좋고 휴대성이 좋고 무게도 가벼워 몽골군의 매우 빠른 기동력의 또다른 원동력이 됫다고 합니다.
일본은 8세기 나라시대부터 채소절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이 절임 음식들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전투식량으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당시 긴 전란으로 각 군대들은 밭에서 흔하게 경작하던 토란을 절여서 병사들이 휴대하게 하거나 우메부시같은 장아찌 채소같은 절임을 군량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 소금뿐만 아니라 된장이나 술지게미 등 다양한 소금을 이용한 절임음식이 등장합니다. 일본 서브컬쳐의 단골인 병량환도 전국시대에 등장한 전투식량중 하나입니다. 보통 닌자들의 비상식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닌자뿐아니라 병사들도 사용햇다고 합니다. 병량환은 고열량 음식으로 하루에 1개~3개정도를 하루 두번정도 섭취햇다고 합니다.
건빵의 유래
이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근대화에 성공해 서양식 전투식량을 들여옵니다. 서양식 보존식이라 함은 통조림을 생각하겟지만, 통조림은 어느정도 기반 시설이 있어야 햇고 군인들을 통조림으로 먹이려면 상당히 많은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통조림은 들여올수 없어 쉽 비스켓을 들여옵니다. 벽돌처럼 딱딱햇다는 쉽 비스킷을 일본에서는 한입 크기로 먹을수 있게 모양을 바꿔 생산햇고 마를건에 빵을 써서 건빵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건빵은 광복후에 우리나라에서도 모양 그대로 군대에서 사용하게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식량 청국장
우리나라의 전투식량은 고구려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무사들은 모두들 전투식량 개념의 비상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삶은 콩을 말안장에 보관해 말의 체온을 이용해 콩을 발효시켜 먹었는데 이것을 전국장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청국장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전국장 이외에도 콩을 발효시켜 매주를 담궈먹기도 했다고합니다.
현대의 보존식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통조림의 종류는 다양해집니다. 국가마다 메뉴 구성이 달라지고 양과 질의 차이가 생깁니다. 한국도 배트남전 부터 일본이나 미군에서 얻은 전투식량이 아닌 k레이션 전투식량을 직접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현대에 와서 문화로까지 파고들어 일반인들도 구매할수 있게 되었고, 캠핑 등 야외활동용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전투식량은 민간 보존식의 영향을 벗어낫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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