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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망한 이유 폭군 콤모두스

by 331675 2021. 5. 3.

로마는 지중해를 자신의 호수로 만들어 버리며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릳고 이어서 5명의 뛰어난 황제가 등장하며 제국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로마를 이 황금기에서 끌어내린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에게 왕권을 준 이유

로마의 황금기를 이끈 황제중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성품이 온화화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훌륭한 황제였습니다. 또한 동시에 동시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로 명상록 이란 철학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군사적 능력까지 갖췄기에 한 제국의 군주로서 완벽한 인물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황금기가 끝나는것은 그가 앞선 4명의 황제들과 달리, 자신의 친아들을 황제로 만들면서 시작됩니다. 

 

로마의 황금기를 이끈 5명의 황제, 오현제의 가장 큰 특징은 마지막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 황제를 제외한 앞의 4명의 황제가 모두 뛰어난 자질을 가진자를 양자로 삼아 황제의 자리를 넘겨주며, 제국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정황만 봐서는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이런 좋은 관습을 끊고, 친아들을 챙기느라 로마의 전성기를 가로막은 역적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완벽에 가까웠던 그가 무슨 이유로 황제의 자리를 아들에게 넘긴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그가 친아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넘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전 황제들이 양아들에게 넘긴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에서 가문은 아들에게로 이어졌는데, 귀족들은 친아들이 없으면 항상 입양을 통해 가문을 존속시켰습니다. 입양한 아들에게 가문의 모든것을 넘겨주는것은 오래전부터 흔한 일이었습니다.

 

오현제시대를 열었던 네르바 황제부터, 네번쩨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까지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가문을 이을 아들이 없었고, 그 때문에 입양을 했던것입니다. 그 외의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황제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황제의 넘겨준 것이지 이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적법한 후계자가 있는데, 입양을 한다는것은 잘못하면 내전을 일으킬 명분을 주는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콤모두스가 황제가 될만한 제목이 아닌것이 문제였습니다. 

콤모두스의 성장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 콤모두스는 태어날때부터 황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황제의 관대함 속에서 자란 그는 교육이 통하질 않던 것인지 망나니가 되었습니다. 개판으로 자라긴 했지만 당장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16살에 공동 황제에 올라 아버지와 함께 로마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역시 아들 콤모두스에게 황위를 계승하게 하는것 외에는 합리적인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도 콤모두스가 뛰어나지 않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정이 지속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콤모두스의 주변에 훌륭한 고문단을 배치했고, 자신이 매우 신임하던고문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와 콤모두스의 누나 루킬라를 결혼시켰습니다. 콤모두스의 이러한 부족한 자질은 당장은 괜찮았지만,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180년 콰디족, 마르코만니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게르마니아로 아버지와 출정을 했는데, 이때 아버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순식간에 새로운 황제로서 전쟁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문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아버지가 신임한 폼페이아누스와 일부 고문들은 성공적으로 진행중인 전쟁을 마저 끝내야 한다고 말했고, 나머지 고문들은 휴전협정을 채결하고 로마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콤모두스가 황제가 된 이유

선대 황제와 잘 진행하고 있던 전쟁을 갑자기 그가 죽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바꿔버리는 그들의  숨은 속내가 의심스러웟지만, 콤무두스는 그냥 로마로 돌아갈 수 있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콤무두스가 로마로 돌아갔을때 야만족과의 협상은 명예로운 평화협정이 되었고 젊은 황제의 언변은 대중에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 그는 로마에서 유흥과 쾌락에 빠져 지내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황제 주변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던 측근들도 황제의 권력을 이용해 마음껏 즐겼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방치했는데도 제국은 약 3년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측근 고문들 덕분에 문제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성격을 바꿔버린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182년 콜로세움 골목에서 한사람이 콤모두스를 향해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를 암살하기 위한 자객이었는데, 그는 원로원이 보내는 것이 외치며 칼을 뽑았지만, 근위대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곧 이 암살 음모를 꾸민자가 누구인지 밝혀졌습니다. 범인은 황제의 누나 루킬라였습니다. 루킬라는 아버지의 측근인 폼페이아누스와 결혼하기 전 아버지와 공동통치했던 황제와 결혼해 황후의 권력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아버지가 죽고 홀로 황제가 된 동생이 권력을 누리자 이에 질투해 원로원과 공모해 암살을 시도했던것입니다.

콤모두스가 폭군이 된 이유

콤모두스는 의지하던 누나가 꾸민 일이라는것이 밝혀지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원로원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강한 적개심이 생겨났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그저 무능한 암군에서 폭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암살 음모를 꾸민 누나 루킬라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원로원에 대해 매우 분노한 황제는 원로원이 범죄자 집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 반대하는 자들을 찾아내기로 마음먹었고, 곧 원로원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먼저 황제는 유력자들 중 타에 모범이 되는 엄격한 사람들을 자신의 방탕함에 대한 비난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주요 높은 공직에 오른 사람들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험이 될 인물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이 의심은 곧 증거가 되었고, 이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이때 지명도가 높은 원로원 의원들을 처형할 때 그에 대해 복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가 붙여준 고문들에게도 포함된 사항입니다.

 

황제는 점점 죄책감같은것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황제가 신하들을 죽이고 향락에 몰두할때 국정을 좌지우지한것은 근위대장 페렌니스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측근으로 황제의 악행을 부추겼으며, 야심이 크고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아들 또한 군사적 재능을 보여 군단장까지 역임하게 됩니다. 때문에 페렌니스는 죽었습니다. 황제의 자리를 탐낸다는 의심을 삿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겟지만, 적어도 황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를 이어 근위대장이 된 사람은 클리안데르 입니다. 능력은 없고 탐욕으로 가득찬 인물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유력자들에게 공직을 공개적으로 매매했고, 거절하면,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었습니다. 클리안데르도 몇년되지않아 죽었는데 로마 곳곳에서 불법적으로 재산을 축적해 시민들의 불만을 삿고, 폭동이 일어나자, 황제가 그의 신병을 화난 군중에 넘겼습니다. 

몰락하는 로마

그렇다면 제국이 사실상 방치되어 무너지고 있을 때 황제는 무엇을 하고있엇을까요? 유력자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면, 향락에 몰두했습니다. 유능한 자들은 대부분 그의 손에 죽었으니, 통치는 무능한 측근들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는 로마 전역에서 모은 300명의 여인들과함께 후궁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는 학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검투 시합과 맹수 사냥을 더 좋아 했습니다. 자연히 취미도 그 쪽으로 갔습니다.

 

그는 신하들이 해주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에 심취해 자신이 로마의 헤라클레스라고 칭하고 다녔습니다. 그러곤 헤라클레스처럼 맹수를 죽이기 위해 로마 밖에서 맹수들을 붙잡아 오도록 했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였습니다. 황제는 전투에 재능이 있었던것인지, 활을 쏘는 족족 맹수들에게 치명타를 가했고, 그 정확도는 멀리서 타조의 목을 맞출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경기장에 사자 100마리를 풀어놓고 이리저리 달리는 사자를 모두 활로 쏴서 죽이기도했고, 코끼리와 코뿔소 그리고 각지의 희귀동물을 데려와 다 죽였습니다. 콤무두스 황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검투사가 되어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실력으로 이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735번의 승리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나쁜놈인것이 검투사 공공기금에서 봉급까지 받았습니다. 황제였기 때문에 꾀나 많은 돈을 가져갓고 아무도 불만을 표할수 없었습니다.

 

다행인건 경기에서 상대방을 무참히 살해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검투경기에 빠지자 헤라클레스에 질려 이번엔 유명 검투사인 파울루스에 빠졌는데 황제는 자신을 파울루스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이 이름을 원로원에서 의원들에게 복창시켯다고 합니다.

 

황제의 악행은 절정에 달하면서 주변에 아첨하는 자들만 남게되었습니다. 원로원 의원과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은 황제의 기분에 따라 계속해서 처형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정신은 병적으로 불안을 느낄 정도로 악화되어 아첨하며 남아있던 신하들도 의심이 든다면 처형시켰습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황제의 측근들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단계까지 이르릅니다. 결국 그들이 먼저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의 애첩 마르키아와 시종장 엘렉투스, 근위대장 리에투스는 황제를 암살하기로 결정합니다. 어느날 콤무두스 황제가 맹수를 사냥하고 왔을때 애첩 마르키아는 독을 탄 포도주를 건냈고, 독기운과 술기운에 정신없는 사이 레슬링 선수를 들여보네 황제를 목졸라 죽였습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었던 그는 결국 의심만 반복하며 믿었던 측근에 배신당해 죽었습니다. 그의 집권기부터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한 로마는 세레루스 황조가 들어서면서 수습되는것 같았지만, 황제가 암살당하면서 235년부터  285년까지 일명 3세기의 위가라 불리는 군황제의 시대가 열립니다.

 

변경 군단들은 자신의 사령관을 황제로 추대했고, 로마로 진군햇으며, 황제의 자리는 반란과 배신으로 계속해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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