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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과 돈가스의 탄생

by 331675 2021. 4. 15.

1868년, 메이지 시대의 시작과 함께 일본은 급격한 서구화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최대한 빨리 서양의 높은 근대화 수준을 따라 잡자'라는 목표와 함께 또하나의 큰 고민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서양인에 비해 현저하게 왜소한 일본인들의 체격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서양인에 대한 열등감이었습니다.

돈가스가 탄생 한 이유

그래서 일본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해야만했고, 그 결과로 마침내 1872년 1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과거 7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육식의 금지를 공식적으로 해제하고, 서양 음식을 온 나라에 보급한다." 곧 "메이지 천황, 고기를 먹다"라는 내용의 보도를 필두로 연일 육식과 관련된 정보들이 일본을 뒤덮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일반 국민들은 육고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1,200년 동안 기피해온 불결하고, 부정타는 육고기를 갑자기 하루아침에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심지어 그들은 육고기에 대한 어떠한 조리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나 고기 먹었다"라며 마치 "이상한 것"을 먹은 경험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몇몇만이 고기를 먹어볼 뿐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정부와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육식 장려정책과 함께 결정적으로 여러가지 재료와 양념에 소고리를 추가해 만드는 일본 특유의 소고기 전골 조리법이 탄생하면서, 비로서 일반 국민들도 조심스럽게 육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하인이 쇠고기를 사서 솥에 몰래 끓였는데, 약이 된다는 말을 믿고 처음으로 고기를 한두조각 먹은 기어이 있다. 나는 그때 먹은 쇠고기가 얼마나 맜있었던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오카다 데쓰, 돈가스의 탄생 중에서

쇠고기 전골의 유행으로 시작된 고기 열풍

한편, 쇠고기 전골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점차 고기맛을 알게되면서, 일본 내 육식에 대한 저항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9년 드디어 서양의 "커틀렛"을 흡수해 일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창조된 음식이 등장하는데 그 음식 이름이 바로 돈까스 입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어깨너머로 배운 서양의 커틀릿은 얇은 고기의 두깨가 2.5~3cm로 두꺼워 지고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것에서 벗어나, 아에 기름속에 넣고 튀기는 방식으로 발전된 다음, 여기에 양배추채와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곁들이는 방식이 더해져, 마침내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양식"으로 탄생했다.

 

육식이 해금되고 장장 60년의 노력 끝에 완성된 이 "결과물"은 마침내 이제는 모든 일본인들이 거부감 없이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돈가스의 등장은 곧 "돈가스의 시대"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인들은 돈가스의 그 엄청난 맛에 금세 메료되었고, 덕분에 돈가스 가게에는 항상 손님으로 가득찼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당시 신문에는 마을 어디에를 다녀도, 돈가스 간판이 보이지 않는곳이 없다. 또 이렇게 돈가스집만 생긴다면, 도쿄는 기름냄새때문에 걸어다니지도 못할것이다. 라는 시대가 반영된 기사가 실리기도 합니다.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 해소의 일환으로 도입된 육식은 소고기 전골을 거쳐 돈까스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 유입된 서양의 커틀릿이 결국 60년이 흐르면서 일본의 돈가스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덕분에 1200년이나 기피해온 불결하고 부정타는 육고기를 어느새 모든 일본인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가스는 단순히 일본의 대표 메뉴 이상의 더 큰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메이지 시대를 살아간 일본인들의 "결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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