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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 항복하지 않은 일본 군인 오노다

by 331675 2021. 4. 15.

1974년 3월 13일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남자 이름은 오노다 히로 그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필리핀 루뱅 섬으로 파견된 일본군 장교였습니다. 그는 당시 스물두살의 나이였고, 운이 좋게도 이듬해인 1945년 종전을 맞이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무려 30년이 지나서야 고국의 땅을 밟게됩니다. 대체 왜 그는 전쟁이 끝났음에도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30년 가까이 필리핀 정글에 남아있엇을까요?

오노다가 받은 명령

종전을 앞둔 1944년 겨울 오노다에게 이런 엄명이 내려졌습니다."항복은 물론 쉽게 자결하지 말라" "만약 병사가 한명이라도 남으면 야자수열매를 따먹으며 끝까지 버텨라" 그때 오노다는 250명의 병사를 이끄는 지휘관으로 적의 후방을 교란하라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미군이 루뱅섬에 상륙하면서 화력에서 밀린 오노다의 부대는 207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43명은 산속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때 오노다는 부하 2명과 함께 섬의 산악지대로 피신하여, 게릴라전을 이어갓습니다.

일본의 패전과 오노다의 혼자만의 전쟁

그러던 중 1945년 8월 일본이 결국 패전하게됩니다. 곧 바로 미군은 전단을 통해 이 사실을 산속에 숨어 있는 일본군에게 알렸고, 실제로 많은 수의 일본군이 그 전단을 보고 투항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노다 일행은 미군의 전단을 보고 상의 끝에 이 전단은 "거짓"이라고 결론내리게 됩니다.

 

종전 1년후인 1946년 봄 일찍이 투항했던 오노다의 옛 동료들이 다시 루뱅섬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오노다 전쟁은 끝났으니 숲에서 나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며 섬 전체를 돌아다니며 외쳤지만, 오노다 일행은 이 또한 미국군이 자신들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계략으로 여겼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나중에는 심지어 일본 정부와 오노다 가족이 현지를 방문하여 투항을 권고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으나, 여전히 그들은 일본의 패전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노다 일행의 외로운 유격전은 지속됬고, 종전 9년차인 1954년에 시마다 오장이 필리핀 정부군에게 사살되고, 종전 20년인 1965년에는 고즈카 일병이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오노다는 개의치 않고 꿋꿋이 혼자만의 전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노다의 혼자만의 전쟁의 종결

그러던 중 1974년 "스즈키 노리오"라는 대학생에 의해 상황은 급 변화하게 됩니다. 당시 세계일주 중이던 스즈키는 "필리핀 루뱅섬에 일본군 패잔병이 아직도 홀로 항쟁중이다" 라는 소문에 흥미를 느껴 루뱅섬을 찾아가 수소문 끝에 마침네 오노다를 만나게 됩니다. 스즈키는 침착한 언행으로 그를 안심시킨 다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오노다는 그제서야 "일본이 패전했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직속 상관이 직접 와서 항복 명령을 전달하기 전까지는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라는 조건을 걸면서 버텻다.

 

그리고 이 상황을 전해들은 일본정부는 곧 바로 그의 직속 상관중 한명인 "다니구치 요시미"를 찾아냈고, 다니구치는 그해 3월 루뱅섬으로 가 오노다에게 임무 해제와 귀국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에 다니구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많은 일본 관료와 언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노다는 인근 필리핀 군기지를 찾아가 사령관에게 차고 있던 일본도를 넘겨주며 정식으로 항복했습니다.

 

오노다는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귀환은 NHK가 한시간동안 생중계했고, 이 방송의 전국 시청률은 무려 45%가 넘었다고 합니다. 패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일본 국민들은 오노다에게 살아있는 일본정신을 보았다며 열광했고, 일본 극우파들은 오노다야 말로 옛 일본의 가치를 그대로 간직한 진정한 사무라이 라고 칭했습니다.

오노다의 일본 생활

또한 오노다는 인기가 매우 높은 탓에 중의원 출마를 권유 받기도 했으며, 그의 경험을 담은 저서 '나의 루뱅섬 30년 전쟁'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과 전후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1975년 그의 형 다다오가 사는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고, 이듬해인 1976년 만 54세 나이로 결혼을 하여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말년에는 일본에 들어와 각종 보수파 인사들과 교류를 가지다, 결국 2014년 1월 도쿄의 한 병원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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